볼만한 글들


백화점에 있는 하늘 공원은 조금도 하늘을 느낄 수 없다.

하늘을 가리려는 건지, 햇빛을 가리려는 건지 알 수 없는 인공적인 조형물로만 가득하고, 심지어는 오디오에서 새소리마저 흘러나오게 한다.

그곳의 흡연 장소에서 피우는 담배만큼 맛없는 담배도 없을 것이다. 내가 담배를 왜 피울까하는 자괴감이 들게 만들 정도로 형편없는 맛이다.

하지만 담배냄새보다 더 지독한 건 백화점을 뒤덮고 있는 냄새다. 이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향수를 다 뿌린 걸까?

섞이고 뒤엉킨 향수 입자들은 나의 코 벽을 긁어대고 쥐어 짜내고 있다.

역한 토기가 올라와 견디기 힘들어 하늘공원에 바람을 쐬러 올라왔지만 여기도 매한가지다. 갈 곳이 없다.

어디로 가야할지 가닥이 잡히질 않아 벤치에 앉아 우중충한 하늘만 보고 있었다.

잿빛이었던 구름은 저물녘이 되니 차라리 보라색에 가까워졌다.

제주도의 바다가 떠올랐다. 바다는 저녁이 되면 구름을 머금어 보라색으로 보이곤 했다.

루게릭병으로 숨진 사진작가 ‘김영갑은 제주의 구름을 받아쓰기하기 위해 일생을 바쳤다’는 누군가의 글귀가 떠올라 왠지 서울의 구름은 더럽게 느껴졌다.

저 구름이 비를 뿜는다면 온갖 질병 덩어리가 들어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더 이상 하늘 공원에 있고 싶지 않았다.

내려가기 전에 마지막 담배 한 모금을 빨아 넘기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혼자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즐기는 화려한 옷차림의 남자, 무슨 고민이 있는 건지, 일이 잘 안 풀리는 건지 고뇌하는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는 정장차림의 아저씨, 쇼핑백을 한껏 쌓아두고 즐겁게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여자, 우는 어린 아이, 그 아이를 달래는 찌들어 보이는 엄마, 그리고 낙서.

낙서가 보인다. 이런저런 다른 낙서들도 많이 보이지만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낙서가 있다.

'외로움을 삽니다. 010-xxxx-xxxx'

여자의 손 글씨였다. 유성 사인펜으로 굵직하게 써놓은 글씨였다.

어떤 마음으로 이 낙서를 쓴 건지 궁금했다. 그녀는 너무 외로운 사람일까? 외롭지 않은 사람일까? 외로움을 즐기는 사람일까?

외로움을 사는 게 어떤 건지 또 궁금했다.

창녀일까? 단순한 섹스 중독자일까?

전화기를 꺼내 번호를 누르고 통화 연결 음이 뚜-뚜 울렸다.

밝은 목소리의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나는 무언가 말을 꺼내볼까 했다.

'외로움을 사신다고 들었습니다. 제 건 얼마에 사주실 수 있나요?'

도저히 말이 나오질 않았다.

미친 사람 취급을 받고 싶지가 않았다. 혹은 미친 사람과 대화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뚝- 전화를 끊었다.

전화기가 주된 통신 수단이지만 주된 대화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바로 이처럼 용이한 대화의 차단 때문이다.

전화는 쉽게 대화를 시도하게 하고 그보다 더 쉽게 거절하게 한다.

거절이 용이해지는 것은 시도의 감소이며, 시도의 감소는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를 초래한다.

커뮤니케이션이 부재한다면 외로운 사람은 많아진다.

온 국민이 한 사람 당 한 개씩 들고 있는 휴대전화는 어쩌면 전자파 대신 고독을 발생시킬지도 모른다.

내가 들고 있는 이 스마트 폰은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게 함으로써 세상의 소리를 차단시키고 자신의 소리만을 듣게 한다. 분주하고 시끄러운 세상과는 상관없이 자신만의 소리에 갇혀 귀를 막고 휴대전화 화면만을 바라보며 눈을 막는다.

인간을 더욱 똑똑하게 해준다는 스마트 폰은 차단의 매개체가 되어 가고 있다.

전화를 끊고 백화점을 나가려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아니, 정확히는 앉았다.

휠체어를 타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일은 고되다.

동물원의 철창 안에서 자위를 해대는 원숭이를 보듯 사람들의 눈이 나의 몸 구석구석을 훑는다. 그리고 휠체어 보다 먼저 엘리베이터에 타는 사람은 없다. 왜냐면 먼저 타는 사람 역시 그러한 사람들의 눈을 느끼게 될 것을 직감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가장먼저 탔지만 엘리베이터가 만원이 될 경우에는 사람들의 시선이 본능적으로 나에게 쏠린다. 그것은 휠체어의 무게 때문일 것이다. 사실은 10KG도 채 나가지 않는 물건일 뿐인데 말이다.

시선은 영어로 포커스이고, 사회의 포커스는 시선이다.

사람들은 주위의 시선에 맞춰 행동하고, 자신의 시선 또한 주위의 시선과 일치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살아가는 데에 편하기 때문이다.

사회의 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건, 다수가 느끼지 못하는 수많은 시선을 견뎌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 ‘혹성탈출’처럼 다수와 소수가 전도되는 것은 얼마든지 부지불식간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말이다.

시선은 사회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애매하게 규정 짓게 한다.

어쩐지 스산함이 느껴져 팔짱을 끼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장애인용 리프트를 이용하여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소란이 일었다.

술에 취한 승객이 기사와 잠시 실랑이를 벌이다가 기사의 뒤통수를 주먹으로 내려쳤다.

기사의 머리와 목이 흔들리면서 버스가 흔들리고 앉아있던 승객들도 술렁였다.

다른 승객이 일어나 취객을 말리고는 있으나 취객은 여간 힘이 센 게 아니었다.

취객은 이내 자신을 말리는 승객을 밀쳐내 버렸고, 밀려나간 승객은 허리를 부여잡고 버스의 복도에 누워있다.

버스기사 역시 최대한 취객의 폭행을 뿌리치고 운전에 집중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취객은 기사의 반항을 오히려 도발로 받아들이고 더욱 열심히, 최선을 다해 기사의 턱에 어퍼컷을 날렸다.

기사는 정신을 잃어버렸다. 10초가 지날 때까지 그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권투선수를 했다면 버스기사는 아마 매번 우세한 경기를 펼치다가 유리 턱에 들어간 럭키펀치에 매번 K. O 당하는 안타까운 선수가 됐을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자 나 역시 취객을 말리거나 버스 운전이라도 대신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늦은 생각이었고 나는 운전을 할 수도 없는 몸이다.

정신을 잃은 버스 기사의 발목은 더욱 무게를 더하여 악셀러레이터를 밟았고 버스는 도심의 빌딩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여차하면 버스에서 뛰어내리기 위해 창문을 열었다.

승객들은 저마다 소리를 지르며 취객을 향한 욕과 본인들의 인생에 대한 아쉬움, 후회를 알 수 없는 언어로 토로했으며, 취객은 호탕하게 웃으며 기사의 머리채를 부여잡고 흔들고 있었다.

빌딩과의 거리는 백 미터 남짓. 이제는 정말로 뛰어내려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할 시간이다.

빌딩까지 예상 도착시간은 10 초.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은 8 초 정도 있다.

기사가 깨어나 브레이크를 밟는다면 그는 적어도 5초 안에는 일어나야 한다.

여기까지 생각을 하는 사이 2초가 지났다. 버스에서 뛰어내렸을 때 내가 입을 부상의 정도는 꽤나 심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버스가 빌딩에 부딪혔을 때 내가 입을 부상의 정도는 더욱 심할 거라 예상된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부터 6 초 안에 뛰어내려야 한다.

양 팔에 온 힘을 끌어 모았다.

5, 4, 3, 2

뛰었다. 아니 떨어졌다. 다행히 버스에 깔리진 않았다.

하체와 뇌가 사이가 좋던 초등학교 시절 합기도 체육관에서 배운 낙법 동작으로 이미 결별한 하체와 뇌를 가지고 시속 80km 이상으로 달리는 버스에서 뛰어내려 충격을 줄인다는 건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나보다.

나는 지면에 닿는 순간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어느 영화에서나 그렇듯이 깨어났을 땐, 응급실에 있었다.

눈앞이 안개가 걷히듯이 조금씩 명확해 졌다.

손가락에 힘을 주니 움직였다. 발가락은 역시나 힘을 줘도 움직이지 않았다.

잠들기 전 깨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깨어나서 깨어났음을 원망했다.

뉴스에서 비행기 사고나 자동차 사망 사고가 보도될 때면 내심 사망자들을 부러워하기도 했었다.

찰나의 순간에 죽을 수 있다는 건 나에겐 마치 행운처럼 느껴졌다.

행운은 누구에게나 어떤 상황에서든 찾아오지만 그것을 잡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용기가 없었던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행운이 왔을 때는 전혀 다른 방향의 용기가 생겼다.

어떻게든 행운을 피하기 위해 발버둥 쳤다. 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것이다.

한심한 자괴감을 느끼는 것도 이젠 진저리가 난다.

“김상훈 씨, 정신 좀 드십니까? 여기가 어딘지 아시겠습니까? 제 손가락을 눈동자로 따라 와보세요”

“네, 정신이 들어요. 병원 응급실인 것 같네요. 손가락을 움직여 보세요. 제가 따라 갈 테니”

손가락을 따라가려니 골이 흔들리면서 눈이 사시가 되는 느낌이다.

어지러워져 침대에 몸을 뉘었을 때 의사가 말한다.

“찰과상, 화상 입으셨고, 뇌진탕도 있네요. 자세한 건 몇 가지 검사를 받아보셔야 될 것 같습니다. 더 궁금한 사항 없으시면 정밀 검진 받으러 가실까요?”

문득 궁금한 게 생각이 났다.

“저기, 아저씨. 혹시 내가 탔던 버스는 어떻게 됐는지 아시나요?”

의사는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순간 지었다가 이내 미소를 숨기고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아, 환자분께서 그 취객이 탔던 버스에 같이 타 계셨군요. 저도 119 요원에게 전해들은 이야긴데, 가까스로 버스기사가 정신을 차려 브레이크를 밟아서 사고를 면했다고 들었습니다.”

짜증이 치밀었다.

애초에 차 따윌 타는게 아니었다. 시발 욕지거리가 튀어나오려 한다.

차가 싫다. 정말 싫다.

버스에 두고 온 내 휠체어를 끌고 온 간호사가 이번엔 나를 끌어다 휠체어에 앉힌다.

“환자분, 검사 받으러 가셔야죠?”

대답을 듣기도 전에 어디론가 출발하여 몇 시간동안 검사를 받은 후에야 풀려 날 수 있었다.

그리고 아프진 않았지만 내 오른쪽 다리는 부러져있었다.

깁스를 하게 됐다. 어쩌면 사람들이 나를 다리가 부러져 잠깐동안 휠체어를 타는 사람으로 봐줄지도 모른다는 허황된 생각을 잠시 해봤지만, 이내 관두고 집으로 향하기로 했다.

집은 아늑하다. 밝지 않은 노란 조명이 나를 풍경과 녹여주어 편안하다. 바깥의 밝은 엘이디 조명과 태양은 나를 너무도 도드라지게 만든다. 도드라지면 초라할 뿐이다.

조용히 녹아들어버리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집에서는 내가 도드라지건, 녹아들던 신경 쓰지 않아도 돼서 좋다.

편안하게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 어제 보다 말았던 책을 읽는다.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이라는 미국 소설이다.

세계적으로 아주 유명한 작품이라는데, 난 그저 심드렁할 따름이다.

지루한 책을 덮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재택근무로 헤드헌팅을 한다. 딱히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은 아니다.

내 상황과 여건에 적합한 직업 중에서, 그나마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고급인력을 찾는 회사에 한 번도 중증 장애인을 추천한 적이 없다.

자칫하면 장애인이라서 장애인을 옹호한다는 오해를 사, 나의 경력에 오점을 남길까 두려워서 훌륭한 스펙과 경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장애를 앓고 있다면 애초에 제외시켰다.

비겁하다.

어쩌면 다수가 소수를 차별하는 것보다, 소수가 또 다른 소수를 만들어 차별하는 것이 더욱 더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일을 대충 마무리 하고, 냉장고에서 맥주와 먹다 남은 치킨을 꺼내왔다.

티브이를 트니 야구 중계가 나온다. 삼성 라이온스가 완전히 이기고 있다.

이승엽은 참 대단한 사람이다.

노력이 가장 큰 재능이라는 범재들을 위한 헛소리와도 같은 명언이 그에게 적용될 땐 설득력을 갖는다. 명언의 실천적 증명을 해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외롭다.

집에 혼자 있는 것은 편안하지만 외롭다.

그래서 나는 가끔이라도 외출을 해야 한다.

그러나 외출은 나에게 또한 고통이기도 하다. 시선은 정말이지 고역이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혼자임에 안도하는 생활의 반복이 계속된다.

자살을 시도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나 미수에 그쳤다. 당연한 일이다.

나에게 자살을 성공시킬 용기가 있었다면, 난 사람들 틈에 섞여 일을 하겠지.

고약한 시선을 견디면서, 그것에 익숙해 져서 사회에 섞여 살아갈 것이다.

용기는 그것을 가져 마땅한 자에게 주어진다. 난 자격이 없다.

전화를 하고 싶다.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핸드폰을 켜본다.

핸드폰에 저장된 연락처를 주룩 훑어본다.

동창생, 다리가 멀쩡하던 시절 사귀었던 여자, 그 이전의 여자, 고교시절 첫 사랑, 엄마.

많다. 내 핸드폰에는 친구라고 분류된 사람이 저리도 많다.

그들의 핸드폰 속에 나는 어떻게 분류되어 있을까?

최근 통화 목록을 보니, 아까 전 백화점에서 전화를 걸었던 외로움을 산다는 여자의 전화 번호가 있다.

또 전화를 걸었다.

낮에는 밝은 목소리였지만, 이번에는 어둡다.

“여보세요”

나는 용기 내어 말을 건다.

“제 외로움을 얼마에 사실건가요?”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른다.

여자가 말한다.

“글쎄요. 외로움은 물건이 아니니까 전화로는 알 수가 없잖아요. 만나서 대화를 나눠봐야 알 것 같네요.”

궁금했다. 무슨 생각을 가진 여자인지 궁금했다.

그녀의 마음은 어딘가 나사가 빠진 건지, 혹은 마더 데레사처럼 성령으로 넘쳐나는 사람인지 궁금했다.

“그럼 저희 집으로 올 수 있어요? 난 장애인이라 어딜 나가기가 불편해서요. 걱정은 마세요. 하체가 마비된 장애인이니까 성불구라 나쁜 짓은 하지 않을 겁니다. 물론 못하기도 하구요.”

여자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럴게요. 좋아하는 차가 있나요?”

나는 되 묻는다.

“차요? 마시는 차 말인가요? 그건 갑자기 왜요?”

살짝 웃음기가 담긴 말투로 여자가 말한다. 분명 웃는 얼굴일 것이다.

“따뜻한 차를 한잔 드리려구요. 특별히 좋아하는 차가 없으시면 제가 좋아하는 걸로 가져 갈게요”

나는 딱히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알았다 한 뒤 집 주소를 불러주고 전화를 끊었다.

기분이 묘하다. 이게 뭐하는 건지 싶다. 그래도 조금은 설렌다.

거울을 보니 꼴이 말이 아니다.

서둘러 샤워를 하기로 한다.

성적인 상황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여성과의 만남 자체와 대화가 기대될 뿐이다. 나에겐 정말로 오랜만에 찾아온 기회이기 때문이다.

샤워를 하자니 깁스가 걸린다. 젠장, 또 낮에 있었던 일이 떠올라 불쾌해진다.

샤워를 포기하고 머리를 감고 면도만 해야겠다.

얼굴에 거품을 묻히고 면도기로 얼굴을 민다.

베었다. 피가 난다. 따갑다. 면도기가 날 꼬집어서 눈물도 난다.

좋다. 오랜만에 흘려보는 눈물이다. 더 시원히 울고 싶어 면도기로 손목을 살짝 그어본다.

따갑다. 피가 난다. 눈물이 흐른다.

엉엉 울어야지. 소리 내어 꺼이꺼이 울어야지.

온갖 기억들을 떠올려 눈물을 끄집어 올린다.

억지 눈물이 멈출 수 없는 통한의 눈물로 변한다.

감정이 점점 추슬러 질 때 쯤, 현관의 벨이 딩동 울린다.

수건으로 대충 상처 부위를 닦고 인터폰에 가서 여자의 모습을 확인한다.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다.

평범한 단발머리, 평범한 청바지, 평범한 운동화.. 이승엽이 ‘노력은 가장 큰 재능‘이라는 명언의 실천적 증명이라면, 이 여자는 ’평범‘ 이라는 단어의 표본과도 같다.

인터폰에 대고 말을 한다.

“누구세요?”

“좀 전에 통화했던 사람이에요”

미소 지으며 그녀는 말한다. 상상했던 대로의 미소 짓는 표정이다. 따뜻한 미소.

“문 열려 있어요. 들어오세요.”

휠체어에 앉은 모습을 처음 본 상대에게 보여주는 일은 민망하다. 부끄러워지거나 오히려 내가 화가 난 표정을 짓게 된다. 첫 만남은 미묘한 감정의 줄다리기와도 같다.

그녀는 집에 들어와 그다지 주위를 두리번거리지 않고 곧장 식탁으로 향한다.

식탁 위에 그녀가 가져온 보따리를 푼다. 보따리 안에는 녹차 잎과 다기들이 있다.

익숙한 듯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고 말을 꺼낸다.

“녹차 괜찮죠? 향이 아주 좋아요.”

대꾸할 말이 없어 잠자코 있다가 백화점에서 나는 역겨운 향수 냄새보단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휠체어에 앉아 가만히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꽤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고 있다.

찻잎을 주전자처럼 생긴 다기에 넣고 뜨거운 물을 넣고 잠시 뜸을 들이더니, 찻잔에 우아하게 차를 따른다.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드셔보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찻잔을 입가로 가져간다.

그녀가 말한 대로 좋은 향이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윽한 냄새다.

조금 미소가 지어진다. 그녀 역시 녹차처럼 편안한 미소를 띠고 차를 음미하고 있다

“그걸로 사는 거예요.”

갑자기 그녀가 말을 꺼낸다. 허를 찔린 느낌이라 바보처럼 대답했다.

“에에?”

“외로움 말이에요. 그 차로 사는 거라구요.”

조금 정신이 이상한 여자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그건 그거대로 괜찮다고 생각이 들었다. 제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이 무서운 세상에 몇이나 될까?

다들 조금씩, 어느 부분은 미쳐있는 채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나도. 저 여자도 말이다.

하지만 말은 생각과 달리 튀어나왔다.

“직업이 뭔가요?”

그녀가 대답한다.

“첼로를 켜요. 자해를 했나요?”

“네, 소속이 있나요?”

우리 둘의 선문답이 계속 이어진다.

“독일에 있는 작은 오케스트라에 있어요. 자해를 하면 기분이 나아지나요?”

“글쎄요, 한국엔 왜 온 거에요? 그리고 백화점에 그런 낙서는 왜 적어 놓은 거죠?”

그녀는 나의 두가지 질문에 하나의 대답만 했다.

“외로워서요”

그리고 그녀는 말 없이 조금 전 처럼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찻 물을 우려내고 내 잔에 차를 따라 주었다.

차 향은 첫 번째 보다 힘이 빠져 더욱 편안해졌다.

그리고 나도 조금 전 보다는 그녀가 편하게 느껴졌다.

이번엔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당신도 자해를 해본 적이 있나요?”

그녀는 소매를 걷어 손목을 보여주었다. 그곳엔 수 많은 흉터가 있었다.

상처 위에 또 다른 상처가 있었고, 상처와 상처가 만나 더욱 길다란 흉터를 이뤘다.

복잡했다. 손목의 상처는 그녀의 마음을 대변하듯 복잡하고 슬펐다.

그리고 그녀가 말했다.

“상훈씨는 왜 걸을 수 없나요?”

“다리가 말을 듣질 않으니까요.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요?”

그녀는 식탁위의 우편물을 손가락으로 가르킨다.

“다리는 왜 말을 듣질 않나요?”

“뻔한 이야기에요. 교통사고. 대학 때 동기들과 엠티를 갔다가 다음 날 아침에 술이 덜 깬 상태로 운전하다가 이 모양이 됐죠 뭐.”

아무렇지 않은 듯 이야기 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 때의 기억이 되살아나 표정이 일그러진다. 싱크대 유리에 비친 내 얼굴이 오늘 더욱 비루하다.

그녀도 더 이상 미소를 짓지 않는다. 슬픈 표정이 됐다.

그녀 역시 어떤 나쁜 기억이 떠오른 걸거다. 기억은 슬프다. 모든 시작은 끝을 전제한다.

나의 출생은 죽음까지의 카운트 다운의 시작이고, 누군가의 연애는 간헐적인 행복과 다발적인 불행을 의미한다. 사고 당시 심장소생으로 살아난 나의 생명은 비참했다.

행복이 끝나면 결국 슬픈 추억이 될 뿐이다.

병실에 누워 친구들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그들의 부모가 찾아와 나를 비난하고, 나의 부모마저 나를 비난했다.

하체의 무감각을 느끼고 먼저 간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나의 소생을 반기는 사람은 모두 날 비난하고 싶어했던 사람들이었다.

두 번째 삶은 그렇게 비난과 원망으로 얼룩진 채 나를 휠체어에 앉혔다.

지금 우리가 마시는 이 차처럼 억지로 우려냈지만, 향은 없는 그런 삶이 시작된 것이다.

그녀의 얼굴에 고통이 보인다.

“당신은 무슨 일이 있었나요?”

대답이 없다.

그녀는 눈을 감고 생각을 하고 있다.

감은 눈이 슬픔을 머금고 있다가 떠졌을 때 슬픔을 발사해버릴 것만 같다.

“뻔한 이야기죠 뭐. 부모의 죽음, 양아버지의 학대와 강간. 그런 뻔한 스토리.”

그녀 역시 아무렇지 않은 척 대실패.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다. 그녀의 불행이 어쩌면 나에게 위안을 줄것만 같은 마음이 들었다. 사람들이 장애인을 바라보며 느끼는 그런 비겁한 안도감 말이다.

“자세히 듣고 싶어요. 할 수 있어요?”

고개를 끄덕이곤 그녀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는 유복한 환경에서 사랑받으며 자랐어요. 좋아하던 음악을 하면서 별다른 고통이나 슬픔 없이 행복했죠. 모두의 삶이 그렇듯이 그러던 어느날이죠. 항상, 어느날이 문제에요.

그 어느날은 내가 첼로 콩쿨에 참가하는 날이었고, 부모님의 결혼 기념일이었죠.

나는 지도 선생님과 아침 일찍 만나 연습을 하고 선생님의 차로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역으로 갔어요. 역에서 부모님을 만나 같이 서울에 가기로 했는데 엄마 아빠가 기차시간이 다되어가도록 오질 않았죠. 핸드폰으로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질 않았어요. 짜증이 났어요.

시내에서 볼 일을 보고 지하철을 타고 온다고 했는데 오질 않아서 엄마에게 문자 메시지로 화를 냈어요.

‘오늘이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 내가 엄마 아빠한테 선물 주고 싶어서 얼마나 노력했는데 어떻게 시간 약속도 안지킬 수가 있어? 실망이야.’

답장이 왔어요.

‘미안해 우리 딸, 사랑해’

이상했어요. 뭔가 잘못된게 틀림없다고 생각했어요.

그 때, 지도 선생님에게 부인의 전화가 왔어요.

‘여보 별일 없지? 지금 중앙로역에 불났어, 사람들이 갇혀서 못나오나봐’”

그녀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울컥임을 진정시킨 뒤 이야기를 이어간다.

“우리 집은 대구였어요. 그 날은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난 바로 그날이에요.

난 곧장 역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중앙로 역으로 갔어요.

검은 하늘. 검은 연기.

연기보다 더 검은 얼굴과 그보다 더 짙은 절망의 표정으로 생수를 마시는 119 요원.

주저 앉은 사람들. 그 속의 나.

울부짖는 사람들. 그 속의 나.

쓰러진 사람들. 그 속의 나.”

그녀는 왈칵 눈물을 터뜨린다. 아까 전 그녀가 눈 속에 머금고 있던 슬픔이 지금 발사된다.

그녀는 울면서 계속 이야기 한다.

부모님을 보낸 이야기, 독일에 이민 간 큰아버지 밑에서 자란 이야기.

독일로 가는 비행기에서의 심경. 큰아버지의 강간. 학대. 이웃의 신고. 수감. 큰어머니의 자살. 죄책감. 그녀 자신의 자살시도.

나는 그녀에게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위로를 해주고 싶어졌다.

그리고 내가 그토록 듣고 싶어하던 말을 해주고 싶어졌다.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영화 굿 윌 헌팅을 수없이 봤다. 로빈 윌리암스가 멧데이먼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는 장면은 수백번을 돌려봤다. 그래서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

“당신의 부모님, 당신의 손목, 마음, 상처 모두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그녀가 화를 낸다.

“그럼 이게 도대체 누구 잘못인데요. 나만 아니었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잖아요.”

나는 계속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그녀에게 해준다.

“그때 내가 그러지만 않았더라면, 그 콩쿨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첼로를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후회는 끝을 몰라요. 결국 태어나지 않았더라면으로까지 생각이 추락하게 되고, 세상을 원망하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신을 비난하죠.

하지만 불행은 그냥 일어나는 거에요. 그냥 어느날 어느곳에서 일어나요. 누구의 잘못도 아니에요. 삶은 그래요. 어느날 어느곳에서 태어나고, 어느날 어느곳에서 죽는거에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단지 어느 날 어느 곳에서 충실하는 것 뿐이에요.”

우리는 또 다시 한참을 침묵한다.

각자의 기억을 되새기며 슬픔을 추억한다.

그녀는 세 번째 차를 우린다. 우리의 슬픔이 녹차처럼 묽어지면 좋겠다.

세 번째 우린 차는 쓴맛이 거의 없어져 오히려 달콤했고, 은은했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저 차와 같은 세 번째 삶이 주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요속에서 세 번째 차를 다 마신 뒤, 그녀는 다기와 차잎은 선물이라 하며 집을 떠났다.

몇 개월 뒤, 집으로 등기우편이 왔다. 봉투를 열어보니 작은 USB가 들어있다.

컴퓨터에 연결하여 열어보니 동영상이 하나 있어 재생 해보니, 그녀가 있다.

첼로 솔로로 나와 위풍당당 행진곡을 연주한다.

아름답다. 그녀의 상처투성이 손이 활을 쥐고 첼로를 어루만지는 모습은 섹시하기까지 하다.

나도 이제 차를 타고 회사로 출근한다.

그렇게 그녀가 한 잔의 차로 내 외로움을 사갔다.

p.s: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난지 10년째 되네요. 애도를 표합니다.

그리고 닥터하우스 3 시즌 12 화(one day one room)를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one day one room.JPG

2013.01.13 04:35:36
1. -_-
지금 이 글이 저에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를 겁니다.

마침 오늘 이 시간에 이 글을 읽게 되어 다행이예요.
2013.01.13 10:41:07
2. 글쓴
일빠 감사요! 위안이 되셨길..
2013.01.13 12:56:26
3. -_-
2013.01.13 17:22:32
4. -_-
아. 중간에 소름이 돋으면서, 눈물이...
제 블로그에 퍼가고 싶지만.

너무 좋은 글 감사해요.
2013.01.13 20:27:07
5. ㅡㅡ
문학사이트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2013.01.14 01:24:58
6. 글쓴
허세글이라고 욕먹을까봐 엄청 긴장했어요 ㅋㅋ
다행히 과분한 칭찬을 듣네요 ㅠㅠ
댓글이 별로 안달렸으니까 자기전에 감사의 마음으로 일일이 답을 하고싶네요.
마침 오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라는 책을 읽어서.
1/ 힘이 되셔서 다행이라니 참 다행입니다.
얼마나 힘이 되는지, 얼마나 그 시간에 힘이 들었던건지 모르지만 저도 허접하지만 이 글을 완성한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혼자 글을 쓰면서 조금은 치유받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댓글에 내가 누군가에게 힘이 될수도 있다는 사실에 힘을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
3/ 뚝.
4/ 소름이 돋았다니... 놀랍네요. 함께 느껴주셔서 감사합니다.
5/지키다니요. 여기서 많이 배우고 놀고 느낍니다.

써놓고 나니 오그라드네요. 내일 일어나서 후회할거같아 시발
2013.01.14 01:39:20
7. -_-
ㅋㅋㅋ 책을 잘 안보는 대신 화낙에서 문학을 접하는 요즘이네요..한때는 문학소년에 문학동아리 회장이었건만..ㅠㅠ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2013.01.14 09:30:16
8. -_-
종종 글올려주세요. 시중에 나온 책들보다 여기글이 더 좋아요. 글의 느낌 너무좋다...
글쓴 책추천좀요. 이렇게 글잘쓰는 분은 어떤책읽는지 궁금해요.
2013.01.14 10:46:52
9. 글쓴
8/ 글을 잘 쓰지도 않지만, 책도 많이 읽지 않아요ㅜㅜ 최근에 본 책이라고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랑 이병률의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박해석의 눈물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미생(존나 개 쩔어), 망가, 야설... 사실은 이 글도 야설로 갈뻔했는데, 여자친구가 노말하게 가라고해서 이렇게 됐어요.
드리마는 닥터하우스 엄청 많이 봤고, 네멋대로해라도 많이 봤고 음..
무슨 책을 읽느냐도 중요하겠지만, 그때 그때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수용하는지가 글쓸때 도움이 되는거 같아요.
특별히 유니크한 책을 읽지는 않아요 ㅎㅎ
2013.01.14 16:03:37
10. -_-;
음...야설버전도 올려줘...부탁이야..
2013.01.14 18:35:56
11. -_-
2013.01.14 23:46:26
12. -_-
글 참 잘쓴다 글쓴
2013.01.16 15:25:22
13. -_-
글쓴이 이 글로 저의 복잡한 마음을 사주셨네요.
덕분에 지저분하던 머리 속이 차분해 졌습니다.
고마워요.
2013.01.22 20:33:07
14. -_-
회사에서 도망나온 오늘. 갈 곳이 이곳밖에 없는 오늘. 이 글을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147 [화낙] 부치지 못한 편지 9 알김; 1572   2015-11-23
146 [화낙] 록큰롤에게 존속살해당한 재즈 (1부, 2부 통합) 알김 1436   2014-11-03
145 [화낙] 저는 다음 생에도 어머님의 아들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1 알김; 1265   2014-11-03
144 [화낙] 한적한 오후의 마스터베이션 -_- 4364   2013-10-28
143 [화낙] 이직 블랙잭 - 생활복서 -_- 2674   2013-10-28
142 [화낙] 섹스를 안하고 싶을 때도 있는 거다. - 김논리 1 -_- 3746   2013-10-28
141 [화낙] 때가 됐다. - 김화가 -_- 2078   2013-10-28
[화낙] 외로움을 사드립니다 -_- 2314   2013-10-28
139 [화낙] 모를 일이다 -_- 1968   2013-10-28
138 [화낙] 나이를 먹었다 -_- 2025   2013-10-28
137 [화낙] 어서 와. 이런 사무실은 처음이지? - ROSEBUD -_- 2782   2013-10-28
136 [화낙] 일단은 나쁜 년으로 시작된 글 -_- 2484   2013-10-28
135 [화낙] 술 마시는 날 -_- 2230   2013-10-28
134 [화낙] 그냥 짧게 쓰는 내 이야기, 어디선가 고생하는 도예 후배한테 -_- 1830   2013-10-28
133 [화낙] 비행기가 지나간다 -_- 1794   2013-10-28
132 [화낙] 추워서 좃같지만 화이팅 -_- 1680   2013-10-28
131 [화낙] 흑인 페미니즘과 성재기 -_- 2812   2013-10-28
130 [화낙] 가장 추운 날 - 구린곰 -_- 1639   2013-10-28
129 [화낙] 내 할머니 - S -_- 2686   2012-09-16
128 [화낙] 그대가 봄 -_- 2598   2012-09-16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