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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큰롤에게 존속살해당한 재즈 (1부)

 

최근에 들었던 팟캐스트 강연 중 딴지라디오 벙커1에서 진행한 강연(강헌, "전복과 반전의 순간")이 재미있어서,


이 중 재즈의 역사와 록큰롤의 발전에 대한 부분을 무표정들과 공유하고싶어 사진과 이야기들을 정리할 예정이야.


중간중간 유투브 음악들도 끼어있으니, 현대음악사에 관심있는 무표정들이 재미있게 읽어주기를.



재즈 하면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래와 같은 이미지가 아닐까 싶어.


'루이 암스트롱'으로 대표되는, 트럼펫을 부는 흑형.


위의 강연은 왜 재즈가 이런 이미지로 대표되는지, 왜 재즈가 흑인의 음악인지를 알아가는 점부터 시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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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의 고향은 흔히들 알다시피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라고 해.


재즈가 '트럼펫을 부는 흑형' 이미지가 된 것은 뉴올리언스의 역사와 매우 긴밀한 연관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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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루이지애나주는 1700년대 초반부터 프랑스의 식민지였어.


루이지애나주의 입구 팻말을 보면 프랑스어가 병기되어있고, 지금도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많이들 써.


여기서 노예로 일하고 있던 흑인들의 노동요인 '블루스'와 찬송가인 '가스펠'이 재즈의 전신이라고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래.


블루스(Blues)는 말 그대로 우울한 음악이고, 힘들게 일하던 흑인 노예들의 삶의 애환을 담은 노래야.


사실 블루스와 가스펠(Godspell)은 음악적으로는 동일한 노래라고 해.


다만 두 노래의 차이는 가사의 차이인데,


'오늘도 일이 힘들구나, 고향에는 언제가나, 옆 목화밭에서 일하던 누구는 이쁘던데...' 같은 세속적 욕망을 담으면 블루스,


신을 찬양하는 내용을 담으면 가스펠이라고 구분하면 된다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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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유투브 영상은 노동요로써의 블루스의 예야.


이때부터 재즈의 '메기고 받는(call and response)' 형태의 보컬/연주 구성이 이어져오고 있다고 해.


우리나라로 치면 '옹헤야'나 '쾌지나 칭칭 나네' 같은 느낌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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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다른 유럽 국가들은 노예로 잡혀온 흑인들을 사람보다 짐승에 가깝게 취급해서 흑인 여자들을 잘 건드리지 않았지만


프랑스 애들은 호기심도 많고 해서 흑인 여자들과의 혼혈 2세들이 많았다고 해.


그리고 이런 프랑스-흑인 혼혈 2세들을 나름 학교로도 보내고 해서 기초교육 정도는 시켜줬어.


이렇게 루이지애나주에서 생겨난 프랑스-흑인 혼혈 2세들을 '크레올' 이라고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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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에서 왼쪽에 있는 애들이 크레올이야.


이 크레올들이 쓰는 언어는 '크레올어' 라고 해서, 간략화된 프랑스어의 형태를 가지기 때문에


언어학적으로 '언어가 어떻게 발전, 계승되는지'를 연구하는 지표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해.


위 사진의 오른쪽에 있는 지폐는, 지금도 크레올어를 공용어로 쓰고있는 '타히티'의 지폐야.


글귀가 모두 두 줄로 씌여있는데, 첫 줄은 프랑스어고 둘째 줄은 크레올어야. 뭔가 미묘하게 닮았지만 달라.


아무튼, 이 크레올들이 초등교육을 받을 때 그 과목들에는 '기초음악' 과목이 있었다는것이 중요해.


이 덕분에 크레올들은 악기를 다룰 수 있게 되고 악보를 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렇게 블루스에서 출발한 재즈가 (서양)음악적으로 조금씩 발전하게 되었고,


대표적인 예로 '랙타임(Rag time)'이라 불리는 피아노 연주양식이 이때 생겨났어.


영화 '스팅'의 메인테마로 히트를 쳤던 'The entertainer'가 랙타임의 대표적인 연주곡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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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루이지애나주는 1803년 프랑스가 미국 정부에 팔아 넘기면서 미국 땅이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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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루이지애나주에는 프랑스애들, 흑형들, 영국애들, 그리고 남미에서 올라온 애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살게 되었고


루이지애나주의 대표적인 항구도시인 뉴올리언스는 세계 역사상 최초의 '국제항구도시'같은 도시가 되었어.


이런 문화의 잡탕속에서 '재즈'라는 음악형태가 생겨나게 되었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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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올리언스 중심부에 '스토리빌'이라는 작은 동네가 있어.


한국의 인천, 목포, 부산 같은 도시나 북유럽의 암스테르담도 그렇듯이, 대부분의 항구도시에는 사창가가 발달하잖아.


이 스토리빌 동네는 미시시피강 하부의 항구도시 뉴올리언스의 사창가인 동네였어.


'트럼펫을 부는 흑형' 이미지로써의 재즈는 이 스토리빌 사창가의 호객용 음악에서 부터 시작되었다고 해.


그럼 왜 하필이면 트럼펫이냐. 그건 뉴올리언스가 항구도시였다는 점이 주요 이유가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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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대 말 쿠바 땅을 둘러싼 스페인과 미국의 분쟁인 스페인-미국 전쟁 당시, 항구도시인 뉴올리언스는 전진병참기지 역할을 맡고 있었어.


여기에 보관된 군수물자중에는 군악대용 악기들이 같이 있었는데,


스페인이 군대를 빼면서 비교적 덜 중요한 군수물자인 군악대 악기들은 여기에 그냥 버려두고 간거야.


그래서 비어버린 뉴올리언스 병참기지 근처에는 버려진 군악기들이 널려있었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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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악기 하면 가장 대표적인게 트럼펫과 작은북이잖아.


군악기는 기본적으로 휴대가 가능해야 하고 보관이 용이해야 하며 소리의 직진성이 높아야 하기에 금관악기가 주로 쓰여.


피아노는 휴대가 불가능하고, 바이올린같은 현악기는 습기에 약해서 보관이 어렵고 소리가 작아서 퍼지지가 않거든.


아까 음악 좀 배웠던 크레올 흑형들이 음악은 하고 싶은데 돈이 없잖아. 그래서 악기를 못구하던 차에


이 뉴올리언스에 굴러다니던 버려진 트럼펫을 집었는데, 이게 정말 '흑형들을 위한' 악기였다는거야.


트럼펫 보면 구멍 하나 뽕 뚫려있어서, 처음 부는 사람은 소리를 내기가 굉장히 어렵거든.


그런데 흑형들은 대부분 입술이 두꺼워서, 그냥 구멍에 갖다대면 대충 불어도 소리가 잘 났다는거지.


게다가 흑형들은 가슴팍이 앞뒤로 두꺼워서 폐활량도 좀 좋아.


그래서 '트렘펏을 부는 흑형'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뉴올리언스의 항구에서부터 마치 '피리부는 사나이'처럼 스토리빌의 사창가로 뱃사람들을 끌고가던 삐끼 중에


'루이 암스트롱'이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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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Jazz)의 어원에는 다양한 설들이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건


'Jass it up' 이라는 미시시피 남부의 흑인 은어 - 성적 흥분을 의미하는 - 에서 부터 왔다는 설,


'Jive's sex' 라는, 흑인 창녀(jive)와의 성교에서 부터 왔다는 설,


그리고 당시 사창가 삐끼들 가명 중 가장 인기가 좋았던 Charles 의 발음이 와전되었다는 설,


이렇게 세 가지가 있는데,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쨌든 '홍등가에서 남자를 꼴리게 만드는 노래'에서 왔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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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뉴올리언스의 사창가였던 '스토리빌'이 재즈의 고향이 되었고,


이 때문에 이후의 수많은 재즈 아티스트들이 'OOO at Storyville' 이라는 타이틀의 앨범들을 많이 발표해.


'재즈의 고향으로, 기본으로 돌아간다' 라는 의미의 앨범들이라고 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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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올리언스 스토리빌의 동네음악이었던 재즈가 미국 전역의 대중문화가 되는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스토리빌의 폐쇄였어.


위의 스토리빌 이야기 사진에도 있지만, 1917년에 스토리빌이 풍기문란 단속에 걸려 문을 닫게 되면서


루이 암스트롱도 스토리빌을 떠나 미시시피강을 따라 미국 중부로 올라갔고,


시카고에 입성하면서 미국 전역에 이름을 알리는 기회를 잡았어.


루이 암스트롱이 전국구 스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물론 뛰어난 트럼펫 실력과 독특한 음색의 보컬 덕분이었을거야.


실제로 루이 암스트롱에게 트럼펫을 가르쳤던 '킹 올리버' 보다 트럼펫 실력이 뛰어났다고 알려졌고,


막사발 깨지는것 같은 독특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는 사람들 귀에 확 꽂혔겠지.


그리고 오늘날 재즈 보컬리스트들의 기본 스킬 중 하나인 '스캣'을 만들어 유행시킨 것도 루이 암스트롱이었어.


루이 암스트롱이 녹음 당시 노래 가사를 미처 다 못외우고 앨범 녹음을 시작해서,


악보를 보며 노래하고 있었는데 실수로 악보를 떨어뜨린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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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녹음 도중에 끊거나 일부 세션 없어도 다 후처리가 가능하지만, 당시에는 한 큐에 연주+노래를 끝냈어야 헀거든.


도중에 끊으면 녹음한게 아까우니까, 어차피 노래가사 별 의미 없는거 루이 암스트롱이 아무 의미 없는 가사를 불렀는데


이게 나름 재미있었는지 녹음 후에 대박이 났대. 그래서 앨범 이름도 아무 의미 없는 '히비 지비스' 야.


하지만 루이 암스트롱이 전국구 스타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입담'에 있었다고 해.


루이 암스트롱의 별명인 사치모(Satchmo)는 '큰 입' 이라는 뜻이래.


실제로 입이 크기도 했지만, 나름 개그본능이 뛰어나고 말빨이 좋아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하지.




재즈의 황금기였던 1920~1930년대는 사실 대공황 때문에 심리적, 육체적으로 많이 망가진 사람들의 시대였어.


너무 사는게 거지같고 힘드니까, 사람들이 사소하나마 삶의 위안으로 선택했던게 클럽에서 듣는 '댄스 음악'으로써의 재즈였대.


낮에는 좆빠지게 일하고, 밤에 클럽 가서 노래 들으며 춤 한판 땡기고 밀주(금주법 시대였으니까) 한잔 하고 집에가서 자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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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좋아하는 강남이나 이태원의 클럽과 달리, 당시의 클럽은 가운데 큰 댄스 플로어가 있는 형태였어.


플로어 뒤쪽에는 소위 '빅 밴드(Big band)'라 불리는, 20~25명 규모의 재즈밴드가 연미복을 입고 '스윙(Swing)'을 연주하고,


플로어를 둘러싸고는 촛불이 켜져있는 테이블들이 늘어선 형태가 본래 '클럽'이었다고 해.


마피아 나오는 영화나, '마스크'같은데 보면 나오는 그게 클럽의 원형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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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재즈의 중요 요소 중 하나라고 하는 '스윙'은 이 댄스음악의 칙칙폭폭 하는 기차소리 같은 리듬에서 왔다고 해.


이쯤해서 마스크의 한 장면을 보고 가십시다. 짐캐리 얼굴은 진짜 고무로 만들어진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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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 음악으로써의 스윙 재즈는, 홍등가 음악의 재즈에 비해 한 가지 요소를 잃어버리게 되었어. 바로 즉흥연주야.


당시에는 앰프가 없었기 때문에 클럽 전체에 음악이 들리게 하려면 필연적으로 빅 밴드가 될 수 밖에 없었고,


각 악기마다 너댓명씩 맡아서 연주를 해야만 했어. 이러니 즉흥연주가 없어질 수밖에.


이전의 5~6명으로 구성된 소규모 재즈밴드들은 서로 눈치를 보면 '얘가 오늘은 삘 좀 받으니 애드리브 몇 마디 더 주자' 혹은


'대충 얘가 여기서 치고 나갔다 오겠구나'라는 감이 오는데, 빅 밴드는 그게 안되는거야.


간혹가다 즉흥연주가 있다고 해도 '몇 마디 안에' 다시 돌아와야만 다른 파트 악기들이 동시에 들어올 수 있으니


악보에 따라 약속된 즉흥연주 - 마치 무술영화에 나오는, 잘 짜여진 합 처럼 - 만 가능했었대.


게다가 재즈클럽의 연주자는 흑인이지만, 클럽 소유주는 백인이잖아. 쎄빠지게 굴러도 돈도 안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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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격분한 흑인 연주자들은 '재즈의 본질로 돌아가자'고 생각했고, 이게 '비밥(Bebop)'의 시작이래.


우리가 알고있는 수많은 재즈 아티스트들이 이 때 폭발적으로 양산되었어.


이 형들에 의해 비밥은 더 난해한 멜로디와 복잡한 리듬을 가지게 되어서, 더이상 이 음악에 맞춰서는 춤을 출 수 없었어.


결국 점점 댄스음악의 형태를 잃어가게 되고, 사람들의 관심에서도 조금씩 멀어지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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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이 비밥은 또 '흑인인권운동'과 맞물려 더욱 대중적인 인기를 잃어가.


위의 사진은 당시 흑인인권운동의 대표적인 캐치프레이즈인 'Sit-in', 즉 '들어가서 앉는다'의 대표적인 사진이야.


흑인들은 식당에도 버스에도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고, 들어가도 백인과는 떨어진 자리에 있어야 했어.


이를 타파하고자 식당에 들어가서 '일단 앉고 보자'는 인권운동을 시작했대. 다만 막나가긴 무서우니까 '영업시간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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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유명한 비밥 드러머인 맥스 로치의 앨범 자켓이야.


'We Insist'가 의미하는건 '흑인의 인권을 주장한다'이고, 위의 sit-in 운동을 심지어 앨범 자켓에도 이용했어.


가게 주인인 백인의 표정이 참 오묘해. '이것들은 도대체 뭐야...' 라는 표정.


이런 흑인인권운동은 '흑인도 사람이다'에서 더 나아가 '흑인임이 자랑스럽다' 혹은 '흑인이 더 아름답다'로 발전해.


말콤 엑스로 대표되는 블랙 팬더당(Black Panther Party)의 무력인권운동이 대표적인 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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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에게 권력을(Power to the People)'의 구호도 이 때부터 유명해지게 되었어.


위의 오른쪽의 사진은 1968년 세계육상선수권 대회의 시상식 사진이야.


금메달과 동메달을 딴 흑형 둘이서 검은 장갑을 한 손에만 끼고 있는데, 저게 블랙 팬더당의 상징이거든.


저 돌발행동 이후로 흑형 두 명은 바로 메달을 박탈당하고 미국육상선수연맹에서 영구 제명되었대.


근데 저 '한 손의 검은 장갑', 많이 본것 같잖아. 마이클 잭슨의 한 손에만 흰 장갑.


그래서 블랙 팬더당원들은 마이클 잭슨을 심하게 미워했대. '저 반 흰둥이 새끼가 우리의 상징을 더럽혔다' 고.




이렇게 흑형들의 재즈는 대중의 관심속에서 점점 멀어져가나... 싶었는데


그 자리를 채우게 된건 역시 흑형들의 음악인 R&B 였어.


재즈의 먼 후손들인 R&B와 Rock'n Roll 로 이어지는 1950~1960년대 현대음악사는 2부에서 마저 이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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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큰롤에게 존속살해당한 재즈 (2부)

 

(1부를 쓰면서 재미없어하면 어쩌나... 나름 걱정하며 썼는데, 많은 무표정들이 좋아해줘서 고맙습니다.)




글의 제목인 '록큰롤에게 존속살해당한 재즈'라는 말은 내가 만들어낸 말이 아니고,


영국의 사회주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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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큰롤이 재즈의 먼 후손쯤 되는데, 록큰롤로 대중문화의 주류가 넘어가면서 재즈가 밀려나게 된 현상을 잘 표현한 말이래.


왜 록큰롤이 재즈의 후손인지, 어떻게 주도권이 넘어갔는지를 설명하며 시리즈를 마무리 지을게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미국은 드디어 세계 최강국이 되었어.


경제적, 군사적으로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패자의 자리에 서게 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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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중산층'이라는 개념이 이 때 등장하기 시작해서, 소위 '아메리칸 드림'을 만들게 되었어.


내가 비록 물려받은 재산이 없어도, 학벌이 좋지 않아도, 열심히 일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돼.


당시 중산층을 상징하는 아이템이 교외 주택가, 자동차, 그리고 거실의 TV 였대.


이렇게 경제적으로 안정된 미국은 지난 대공황 시절과 달리 10대들이 풍요로운 성장을 할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실질적으로 1950년대 미국의 10대들은 사실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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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먹고 살만해 지니까, 부모들이 애들을 잡기 시작한거야.


없이 살던 때에는 공부가 뭐 중요해. 사고 치지 말고 '착하고 건강하게만 자라다오'였는데,


중산층이 늘어나고 경제적으로 안정되니까, '내가 너한테 못해준게 뭔데 공부를 못하냐'로 변한거지.


애가 성적이 안좋으면 애를 혼내고, 부모는 또 서로 싸우고, 흔한 레토릭들 있잖아 왜.


그래서 10대들은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을 시작해. '엄마 아빠는 아무것도 몰라요. 대화하지 맙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애들이 부모한테 개기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부모가 가장 싫어하는 행동을 하는거잖아.


이 10대들이 선택한 반항의 아이템이 바로 R&B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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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R&B하면 떠올리는 발라드풍의 노래와 달리, 오리지널 R&B는 흑인들의 서브컬처 중 하나였어.


위의 사진은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던 R&B 가수 리틀 리차드의 사진이야.


나도 리틀 리차드라는 이름은 이 강연을 통해 첨 들었지만, 아래 노래는 무표정들에게도 생소하지 않을거라고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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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는 리틀 리차드의 첫 번째 히트곡인 'Tutti Frutti' 라는 노래야. 이 노래의 가사는 여자경험에 대한 이야기이고.


'데이지라는 여자를 만났는데, 왼쪽으로 비비고 오른쪽으로 비비고 아주 죽이더만' 같은 내용이거든.


이것도 사실 순화된 가사인게, 원래 노래 가사에는 'Tutti Frutti' 대신 'Tutti Booty' 라는 '엉덩이'를 의미하는 문구가 있었고,


심지어 '뻑뻑하면 너무 힘주지 말고 윤활제를 쓰면 쉬워' 라는, 명백히 후배위 혹은 애널섹스를 암시하는 가사를 담고 있었대.


리틀 리차드의 두 번째 히트곡은 'Long Tall Sally' 라는 노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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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의 내용은 '원조교제'래. '우리 동네 키 크고 잘빠진 소녀 샐리는 존 삼촌이 원하는 모든걸 가지고 있지' 라는 가사야.


게다가 무엇인가를 반드시 연상할 수 밖에 없는 저 춤을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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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사의 노래를 심지어 흑인이 부르는데, 기독교가 주류인 백인 기성세대에서 이런 노래를 달가워할리가 없잖아.


그러니까 미국의 10대들이 '부모들이 가장 싫어하는 행동'으로 이런 R&B 노래를 골라서 듣기 시작했다고 해.




원래 R&B라는 음악 장르는 따로 이름이 없이 'Racial Music'이라고 해서 뭉뚱그려 '흑인 음악' 이라는 장르였는데,


10대들에 의해서 앨범들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앨범유통차트인 빌보드 차트에서 이 장르에다 이름을 붙이게 되었어.


세션은 재즈 세션에다 스윙 리듬을 가져왔고, 보컬은 블루스의 보컬이니 'Rhythm and Blues' 가 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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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R&B는 1930년대 재즈의 주류 반열에 끼지 못한 비주류 흑형들의 하위문화(서브컬처)였어.


흑형들이 아무리 트럼펫에 최적화된 신체구조를 가졌더라도, 훌륭한 재즈 아티스트가 되는건 꽤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잖아.


그래도 놀고는 싶었던 흑형들이 마침 1940년대 전쟁에 참가해서 돈을 좀 만지게 되면서 음악을 할 수 있게 된거야.


앰프 가져다가 가장 간단한 세션 편성(기타/베이스/드럼, 혹은 색소폰/베이스/드럼)을 갖춰놓고,


단순한 음악 코드(C-C-C-G-G-G-F-F-F)로 곡을 짜고, 온갖 저속한 노래 가사를 갖다 붙인게 R&B의 시작이었다고 해.


우리로 치면 '키스해주세요 앞이빨이 쏙 빠지도록, 꼭 안아주세요 갈비뼈가 으스러지도록' 급의 노래였다고 하더라.



R&B가 잘 팔리던 1955도 여름방학에, 미국에 '블랙 보드 정글'이라는 제목의 영화 한 편이 개봉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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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문제아'들이 학교에서 일으키는 트러블, 그리고 선생님들과의 화해를 다룬 내용의 영화였는데,


학교에서 학업의 압박에 시달리던 10대들의 엄청난 지지를 받으면서 이 영화가 크게 흥행했다고 해.


본 강연에서 강헌은 '여고괴담'을 한국의 예로 들었는데, 난 여고괴담보다 '비트'가 한국의 예로 더 비슷하지 않나 싶어.


아무튼, 이 영화의 흥행과 더불어 영화의 주제곡이었던 'Rock around the clock' 이라는 노래가 빌보트 차트 10주 1위를 기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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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리틀 리차드의 R&B 영상에서 색소폰 솔로와 달리 여기선 중간에 솔로를 기타가 연주하는점이 다르고,


노래 가사가 조금은 더 순화되었잖아. 이게 R&B와 Rock'n Roll의 차이라고 보면 된대.


마치 블루스와 가스펠처럼, 음악적으로는 R&B와 Rock'n Roll이 동일한 음악인데


세션의 구성과 가사/보컬이 조금 다르고, 전반적으로 템포가 약간 빨라진 음악이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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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흑형은 '척 베리'라는, 록큰롤 기타의 교과서를 쓴 아저씨라고 해.


이 형의 음악을 리버풀 구석에서 듣던 존, 폴, 조지 같은 애들이 기타를 연습해서 후에 데뷔하게 되었다지.


아래의 영상은 척 베리의 대표곡 중 하나인, 'Sweet Little Sixteen'인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멜로디일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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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는 후에 비치보이스의 'Surf'in USA' 와 표절시비에 휘말려. 결국 비치보이스가 표절했다는 법원 판결이 났다고 하네.




이렇게 R&B가 점점 전국적인 트렌드를 타기 시작하고 있을 때, 테네시주 멤피스 시골마을로 이야기의 중심이 옮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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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의 '썬 스튜디오' - 우리로 치면 '태양 음향'쯤 되는 촌스러운 이름의 - 레코드사 사장은


'아, 나도 저렇게 R&B 판 하나 히트시키면 떼돈을 벌텐데' 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실행에 옮기진 못했어.


흑인을 데려다가 앨범을 냈다가는 백인 사회에서 곧바로 매장당할테니까.


그런데 1955년에 이 레코드사에 오디션을 보겠다고 온 17세 트럭운전수 하나를 본 순간, 대박을 직감하게 돼.


생긴건 키 크고 멀쩡한 백인인데, 히프를 흔들어대며 노래하는 얘한테서 흑인 블루스 보컬이 터져 나오는거야.


그 트럭운전수 소년이 바로 엘비스 프레슬리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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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는 1956년 '에드 설리번 쇼'라는, 우리로 치면 '일요일 일요일 밤에'와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짬뽕 같은 TV쇼에서 데뷔해.


이 데뷔 당시 에피소드가 재미있는데, 엘비스의 별명이 '골반의 엘비스(Elvis the pelvis)' 잖아.


매니저와 소속사 사장의 각종 로비를 통해 첫 스튜디오 녹화를 시작했는데 도중에 컷 사인이 떨어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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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신나게 엉덩이를 흔들어 제끼면서 노래를 하니까 PD가 '이거 음란성으로 심의에서 짤려' 라며 녹화불가 선언을 해.


이때 매니저가 궁여지책으로 '그러면 엉덩이는 화면에 안잡히게 바스트샷만 찍으면 어떨까'를 제안한게 받아들여지고,


그렇게 나온 TV 화면이 위의 사진 중 오른쪽 밑의 TV 화면이야. 쇼 처음부터 끝까지 저렇게 엉덩이는 화면에 안잡혔대.


그런데 엉덩이를 흔드는데 어깨가 가만히 있을리가 없잖아. 원래 보일듯 말듯 한게 더 야하다고,


'도대체 저 하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건지' 궁금해한 사람들 덕분에 저 데뷔 쇼가 엄청난 흥행을 거뒀다고 해.


그리고 엘비스는 1956년 데뷔한 해 52주 중 38주동안 빌보드 차트 1위를 석권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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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가 흑인 보컬을 가지게 된건 엘비스의 성장배경과 연관이 깊어.


엘비스는 미시시피주 시골 출신 부모님 밑에서 가난하게 자랐고, 아빠는 알콜중독에 엄마는 일용직 노동자였대.


테네시주 멤피스로 이사갔을 때에도 백인들이 있는 도심이 아니라 흑인들 거주지 근처에 살았던거야.


그래서 교회도 흑인 교회를 다니며 가스펠 보컬을 연습했고, 주변의 흑인 친구들과 춤연습을 했다고 해.


아래 영상은 너무도 유명한, 엘비스의 '하운드 독' 영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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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운드 독(Hound Dog)은 사냥개란 뜻이잖아. 이건 흑인들 언어로 '껄떡쇠' 정도 되는 뜻이래.


아무 여자나 보면 좋다고 헥헥대면서 치근대는 남자를 뜻하는 은어라고 하더라.


본래 이 노래는 엘비스의 노래가 아니고, 1953년에 흑인 여성 블루스 가수인 '빅 마마 손튼'의 노래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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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의 락큰롤 버전과 달리, 빅 마마 손튼 버전의 하운드 독은 히트를 치지 못했었어. 흑인의 블루스였으니까.


원곡에 대한 오마주인지, 아니면 락큰롤이 R&B 및 블루스의 후손이라는 점에 대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위의 엘비스 영상에서 1분 30초쯤을 보면 갑자기 블루스 스타일로 하운드 독을 부르는 엘비스를 볼 수 있어.




락큰롤의 흥행이 단순한 흥행이 아니라 '락큰롤 혁명'이라고 불리는데에는 문화의 전파 방향에 그 이유가 있어.


락큰롤 이전 시대까지 대중문화는 모두 어른들의, 어른들이 주도하는 문화였어.


하지만 락큰롤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10대들에 의해' 주도된 대중문화라는 점에 역사적 의의가 있다고 해.


이렇게 락큰롤을 통해 기성세대의 등에 비수를 꽂은 10대들을, 미국의 기성세대는 결코 용서하지 않았어.


대대적인 록큰롤 보이콧운동을 통해 록큰롤 학살을 펼치기 시작한거야.


'록큰롤은 사탄의 음악이다', '록큰롤 때문에 신의 아이들이 병들어 가고 있다' 라며


어디서 많이 들어본것 같은 레파토리-1990년대 서태지가 생각나는-로 록큰롤을 탄압해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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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노래 '라 밤바'로 큰 인기를 얻었던 록큰롤 가수 리치 발렌스(Ritchie Valens)는


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의문의 비행기 폭파 사고로 사망했어.


록큰롤 기타의 교과서를 썼던 척 베리는 '주 경계선을 넘었다'는 미심쩍인 이유로 체포당해.


엘비스는 조용히 군대에 입대하면서 록큰롤 음악 활동을 중단했고,


리틀 리차드는 어느날 갑자기 어울리지 않게 '전 어제밤에 신을 보았습니다' 라며 은퇴를 선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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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Rock'n Roll 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라디오에서 음악을 틀어댄 PD들도 대거 척살당했어.


사실 Rock'n Roll 이라는 이름을 붙인 전설적인 PD 알란 프리드(Alan Freed)는 좀 혼날 이유가 있기는 해.


Rock 과 Roll 은 '바위가 구른다'가 아니라, R&B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동사 두 개를 붙여서 만든 이름이야.


흑인들 은어로 Rock은 '부딪히다', Roll은 '휘감다' 라는 의미로, Rock and Roll은 섹스를 의미하는 은어거든.


우리로 치면 제주와 광주를 제외한 전국에서 섹스를 의미하는 은어 '빠구리'를 음악 장르 이름에 붙인거나 마찬가지야.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유희열이 '오늘은 새로나온 빠구리 한 번 들어볼까요. 모두들 즐떡!' 했다고 상상해봐.




이렇게 탄압받으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나 싶었던 록큰롤을 구원한건 영국 리버풀의 양아치 넷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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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입성한 비틀즈는 다시 한 번 미국을 록큰롤 열풍으로 몰아넣으며


더이상 기성세대들이 탄압할 수 없을 만큼의 트렌드를 이끌게 되었어.


비틀즈 역시 엘비스처럼 '에드 설리번 쇼'를 통해 데뷔해.


첫 데뷔때 반응이 너무 뜨거운 나머지 그 다음주 에드 설리번 쇼는 '비틀즈 1시간 특집' 방송을 편성했는데,


이 때 전국 시청률 38%의 기록이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는 기록이고


당시 뉴욕은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1시간 동안 범죄율 0%를 기록했대. TV 보느라 딴짓할 시간이 없었던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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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서슬퍼런 록큰롤 학살에서 비틀즈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건 일종의 위장전술 덕분이었대.


이 해맑게 웃고 있는 네 명의 소년들을 봐. '어머님들, 우린 위험하지 않아요' 라고 온 몸으로 말하는것 같잖아.


덕분에 록큰롤 탄압을 주도했던 학부모-교사 협회의 타겟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하지.


근데 얘들은 원래 이렇게 착하고 순수한 애들이 아니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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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의 데뷔 전 사진들을 보면,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록커'의 패션을 하고 있어.


이게 당시 영국에서 유행하던 젊은이들의 패션 '록커족'과 '모드족'의 컨셉 중 '록커족'의 패션인거야.


얘들이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들어가면서 '록커족' 컨셉으로 들어갔다가는 뼈도 못추리겠다고 판단하고,


'모드족' 컨셉-좁은 라펠 자켓과 좁은 깃 넥타이, 라운드 컷 드레스 셔츠-으로 미국에 들어간게 먹힌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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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비틀즈의 인기가 점점 높아져가고 록큰롤 탄압도 뜸해지던 때부터 비틀즈는 머리가 길어져.


미국 진입을 위해 잠시 숨겨두었던 본성을 드러내며 '속았지?' 라고 미국 기성세대의 뒤통수를 친거야.


'우리는 예수보다 더 유명해'와 같이 도전적인 발언도 하고, 반항의 상징인 히피즘을 전파하기도 했어.





이걸로 재즈와 R&B, Rock'n Roll 로 이어지는 현대음악사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왜 제목이 '록큰롤에게 존속살해당한 재즈'였는지 설명이 되었으면,


그리고 음악에 관심있는 무표정들에게 재미있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다음주 금요일에는 강헌의 '힙합과 소울'을 주제로 한 강연이 있는데,


가능하면 그 이야기도 정리해서 공유할 수 있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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